유럽중앙은행(ECB)은 암호화폐 시장이 일반 금융시장과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금융 안정성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4일(현지시간) ECB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암호화폐 시장 내 금융 안정성 위험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ECB는 △암호화폐 시장 규모 및 복잡성 증가 △기존 금융시장과의 상호연결성 강화 △레버리지 이용 및 대출 활동 증가 등을 언급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과 기존 시장과의 통합 추세를 지속할 경우, 기존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전체 금융 시장의 1% 수준이지만,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복잡성 증가하는 암호화폐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 시총은 2020년 초에 비해 7배가 커졌다. 2021년 연말 암호화폐 시총은 3000조원까지 불어났다. 시총이 대형 주식과 비슷한 암호화폐는 25종뿐이지만, 총 1만6000종의 암호화폐가 유통되고 있고, 하루 평균 10종이 새로 출시된다. 


주요 암호화폐의 거래량은 뉴욕증시 거래량과 비슷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암호화폐 하위 부문인 스테이블코인, 대체불가토큰(NFT), 디파이도 지난해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며 추가적인 시장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CB는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 △프로그래밍 기능 등 암호화폐의 독특한 특성 △기관의 포트폴리오 다각화 방안 채택 △주요 결제 업체의 암호화폐 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ECB는 "시장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압박 상황에서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체적인 충격 흡수 장치가 부족한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개인, 기업, 금융기관 등 암호화폐 채택↑ 


은행은 전통 금융권과 암호화폐 시장의 연결 수준이 강화되는 것 또한 금융 안정성 위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봤다. 주요 결제업체가 암호화폐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고, 고객 수요에 헤지펀드, 패밀리오피스, 비금융 기업, 자산운용사 등 기관의 암호화폐 투자 사례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개인 투자자는 암호화폐 투자자 기반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ECB가 6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0%는 "가구원 중 암호화폐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5000유로 미만(약 670만원)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그룹이 가장 많았고, 1000유로 미만(약 130만원)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그룹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3만 유로(4000만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응답자도 6%에 달했다. 

ECB는 암호화폐 시장이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시장 유지를 위한 안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 △불만 제기·청구 등 권리 보호 절차 부재 △복잡한 레버리지 내재 상품 △사기 및 악성 활동(자금 세탁, 사이버 범죄, 해킹, 랜섬웨어) △낮은 가격 투명성과 유동성으로 인한 시장 조작 등 다수의 문제를 지적했다. 


기관투자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ECB는 피델리티디지털애셋의 유럽 기관 대상 설문조사를 인용하며 "암호화폐에 투자 노출한 기관 응답자가 2020년 45%에서 2021년 56%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관 투자 증가에 대해 ECB는 "아직 미규제 상태지만, 당국이 어느 정도 시장을 인정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독일이 지난해 7월 기관 펀드가 자산의 최대 20%를 암호화폐에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 암호화폐 파생상품을 제공하는 규제 거래소가 늘었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금융기관 참여는 암호화폐 시장 성장을 촉진하면서 금융 안정성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ECB는 "유럽 은행 및 금융기관들은 암호화자산규제안(MiCA) 시행을 통해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수탁, 거래, 시장 조성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MiCA는 2020년 9월 처음 제안됐으며, 합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이르면 2024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암호화폐 레버리지, 디파이 대출 확대 


ECB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지원하는 레버리지가 위험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는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차입금이다.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거금의 125배까지 레버리지를 지원하고 있다. 

ECB는 최근 몇 년 동안 암호화폐 레버리지 활용이 더 증가했는데, 재담보 설정이 가능한 디파이 부문 성장이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재담보 설정은 한 거래에서 빌린 자금을 다른 거래에서 담보로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ECB는 "레버리지 증가가 리스크 증가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레버리지 투자 관련 청산 물량이 가격 변동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암호화폐 디파이 대출 활성화도 언급했다. 해당 시장은 전통 시장 대비 규모가 작지만, 기존 은행보다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파이 플랫폼을 통한 암호화폐 대출은 지난해 14배 증가해 최근 94조원까지 불어났다. 

 

ECB는 "중앙화·탈중앙화 서비스 업체들이 모두 암호화폐 대출을 제공하고 있지만, 일반 신용 대출과 달리 규제 감독에 따른 심사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또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과 암호화폐 디파이의 재담보 설정 허용은 담보 자산에 대한 대출금 비율인 LTV 한도를 초과할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시장 충격 상황에서 유동성의 급격한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침체기에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심리가 확산되면 투자자가 대규모 자금을 인출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CB는 "암호화폐 대출 유동성이 탈중앙화 프로토콜에서 집중되어 있어 대규모 인출 사태 위험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해당 시장은 규제 밖에 있기 때문에, 은행 예금의 경우처럼 투자금을 돌려받을 것을 보장할 수 없다"고도 경고했다. 


은행은 암호화폐 대출에 기존 금융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면서, 최근 관련 규제 집행 조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디파이 대출업체에 1억 달러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 코인베이스가 SEC 경고에 대출 상품 출시 계획을 철회한 사례 등을 언급했다. 


ECB는 "규제가 모든 기술 발전에 중립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전통 금융 서비스를 모방한 디파이 플랫폼은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해 금융 규정을 준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답은 '규제 강화'와 '투명한 정보 제공' 


ECB는 금융 안정성에 대한 암호화폐 시장 위험성을 완화하기 위해 신속한 규제 도입을 촉구했다. 규제감독 당국이 시장 발전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국제 협력을 통해 규제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은 "MiCA을 조속히 입법할 뿐 아니라 부문별 세부 규제 검토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CB는 "암호화폐 시장 관련 데이터가 부족할 뿐 아니라 측정 지표나 데이터의 신뢰성과 일관성도 부족하다"면서 "공식 통계나 당국 보고 자료가 없어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과 경로를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시장 위험성을 파악하기 위해 표준화된 보고 방식과 공시 요건을 갖추고 정보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 금융권에는 "최우선 사안은 금융 안정성"이라면서 "암호화폐 시장과의 연결성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신중히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