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금속·곡물 가격이 선물시장에서 요동친 것이 소비자물가지수(CPI) 폭등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선물가격이 급변동하면서 위험이 높아지자 중개인들이 거래를 꺼리고, 이에따라 소수가 시장에서 가격을 좌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가격 급변동이 심화하는 악순환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같은 선물시장 기능이상이 결국 실물 경제에도 충격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물가, 40년만에 최대폭 상승

이날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비 8.5% 폭등해 40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2월 CPI 상승률 7.9%보다 더 높아졌다.


월별 변동성이 큰 이 두 항목을 제외한 이른바 근원 CPI는 1년 전보다 6.5% 상승해 역시 2월 상승폭 6.4%보다 높았다. 1982년 8월 이후 약 4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전년동월비 50% 가까이, 에너지 가격은 30% 넘게 폭등했다. 전기비도 10% 넘게 올랐고, 식료품 가격도 CPI 상승률 8.5%를 웃돌았다. 선물시장은 현물가격 급변동에 대비하기 위한 헤지기능을 갖고 있지만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서 벗어나 회복 시동을 걸면서 심각한 원자재 수급불균형 여파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에 2월 후반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선물시장 급변동을 악화시켰다. 특히 에너지와 곡물 부문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주요 상품 선물가격은 폭등세다.

봄철이 가까워지면 값이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미 천연가스 가격은 올들어 75% 넘게 폭등했다. 유가는 최근 고점에 비해 배럴당 30달러 가까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올 전체로는 25% 상승한 수준이다.

석탄과 대두유, 귀리, 카놀라, 면실유, 네덜란드 시장의 천연가스, 파리와 시카고 시장의 밀, 휘발유, 경유, LPG, 팜유, 구리, 주석 등은 올들어 모두 사상최고가를 찍었다.

대두와 냉동삼겹살, 아연 등도 사상최고치에 바싹 다가선 상태다.

선물가격이 치솟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제분소, 광산, 석유·가스 채굴업체, 농장 모두 공급 확대에 열을 내고 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가뜩이나 모자란 석유·가스·광물·곡물 공급이 추가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가뭄, 홍수 등이 겹쳐 작황을 악화시키고, 지하자원 채굴도 방해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의 상품전략가 트레이시 앨런은 "에너지, 농작물, 금속 등 모든 부문에서 재고가 심각히 낮은 수준"이라면서 내년까지 가격 고공행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앨런은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관했다.

■선물시장 사실상 붕괴

선물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지난해 미국의 원목 사태에서 촉발된 뒤 시간이 갈수록 사실로 확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후반 유럽 가스 가격은 네덜란드 시장에서 연초보다 10배 넘게 폭등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긴장 속에 유럽으로 가스 수출을 급격히 줄이면서 액화천연가스(LNG)에 거래인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전기비도 올랐고, 대규모 가스를 사용하는 비료공장은 생산을 대폭 줄였다.

선물 가격이 급격히 변동하자 거래소와 투자은행들은 선물중개인들이 선물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내야 하는 증거금을 큰 폭으로 올렸다.

■브렌트유 증거금 2배 넘게 폭등

일부 중개인들은 이때문에 파산했고, 선물 거래 역시 크게 위축됐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의 경우 다음달 선물을 계약하려면 증거금으로 배럴당 11.92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1년 전보다 2배 넘게 폭등했다. 일반적인 계약인 1000배럴의 경우 1만1920달러를 증거금으로 내야 한다.

브렌트 가격이 배럴당 63달러에서 115달러 수준으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미국 원유 선물시장에서도 시장참가율 지표인 미결제거래잔고(Open Interest)는 지난 1년 간 25% 급감했다.

2년 전에 비하면 미결제거래잔고가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한편 이날 뉴욕증시도 요동쳤다. 장 중반까지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탔지만 정점은 멀었다는 분석들이 잇따르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