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테라·루나 폭락과 FTX 파산 사태 등을 겪으며 가상자산 산업이 큰 위기를 맞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기관을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중국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홍콩에서 이달부터 라이선스제를 도입해 기관과 개인투자자 모두에 가상자산 거래를 전격 허용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한국도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나 거래소 상장피(fee) 논란이 불거졌지만 오히려 이를 도화선 삼아 자율규제를 강화하고 법제화에 속도가 붙는 등 시장은 시나브로 성숙해지는 모양새죠. 이처럼 더 이상 가상자산 산업의 물줄기를 막을 수 없는 만큼 하루빨리 업권법을 만들어 시장을 정비하고 양성화하는 한편 기관들의 투자도 허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 세계는 기관 투자가 대세, 한국은?
미국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총 거래량 1450억 달러 가운데 기관투자가가 1240억 달러로 전체의 86%를 차지했는데요. 전체 거래에서 기관 비중은 전년 대비 10%포인트 증가하며 개인투자자의 이탈을 상쇄했습니다. 또 홍콩증권선물거래위원회(SFC)는 이달부터 자산 수탁 요건, 고객 자산 분리 등을 충족한 거래소에 라이선스를 발급하기 시작했죠. 이에 따라 라이선스를 받은 거래소의 모든 거래가 합법화됐고 개인은 물론 기관 모두 거래가 가능합니다. 이를 두고 굳게 닫힌 중국의 가상자산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여전히 가상자산 업권법은 1단계 ‘투자자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시장을 정의하고 상장 등을 규정할 2단계 법안은 요원한 채로 사실상 기관의 참여를 막는 ‘그림자 규제’가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을 없애지 않는 이상 기관 투자를 계속 막을 수 없는 만큼 우리도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하죠. 기관 참여를 시발점으로 가상자산 시장 업권법이 마련되면 투자자 보호 이슈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이유입니다.
💸 기관 투자 허용 필요성 속속 제기돼
국내 가상자산 업계가 기관의 시장 진입 등 투자 저변 확대에 대비해 다양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점도 기관 투자 허용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데요. 기관 투자에 꼭 필요한 수탁 업무를 위해 시중은행과 가상자산 기업은 2020년부터 차례로 수탁(커스터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수탁 업무는 전통 금융권에서 금융기관이 고객의 금융자산을 대신 보관·관리하는 서비스죠. 대규모 자금을 다루는 기관은 도난 등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자산을 전문 업체에 맡기는데요. 조진석 KODA 이사는 “투자 목적의 일반 법인은 물론이고 가상자산을 거래소에 상장했거나 상장 준비 중인 재단, 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나 대체불가토큰(NFT) 등 사업 목적으로 커스터디를 이용하는 법인 등이 모두 고객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관 전문 가상자산 관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웨이브릿지는 미국에 자산 운용사 네오스를 설립하고 가상자산 기반의 투자상품 ‘비트코인 하이인컴 사모펀드(BTCHI)’ 출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기반 파생상품을 내놓기 힘든 만큼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뒤 향후 국내 시장에 내놓는다는 전략이죠.
💰 “변동성 리스크로 포기하기엔 이익이 너무 커”
임종인(사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기관투자가의 진입이 가상자산 시장을 보다 과학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그는 “기관투자가는 소문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가상자산의 상품성과 프로젝트의 성장 가능성을 분석한다”며 “금융사가 주식과 선물 리서치를 발간하듯이 가상자산 평가 보고서를 통해 일반인들도 기관의 동향을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기관의 매매 내역이 공유되고 기관을 통해 간접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내다본 겁니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개인투자자의 가상자산 스캠(사기)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 해법 역시 기관의 참여라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가상자산 시장은 기관투자가들에게 새 기회가 될 수 있는데요. 임 교수는 “가상자산으로 펀드를 만들거나 선물 투자에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늘릴 수 있다”며 “변동성이 큰 리스크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통 금융을 넘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국내 기관의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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