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품 업체와 떠오르는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가 공존하는 뉴욕의 패션 1번지 소호.

지난 9일(현지시각) 방문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매장. 지난 6월 문연 콘셉트 스토어의 첫인상은 샤넬, 루이비통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여기에 NFT(대체불가능토큰) 관련 부스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하자 번쩍 번쩍 불빛이 새어나오는 매장 한켠의 작은 공간으로 안내했다.

뉴욕 소호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콘셉트 매장 내 NFT 부스. / 뉴욕=이현승 기자

뉴욕 소호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콘셉트 매장 내 NFT 부스. / 뉴욕=이현승 기자

부스는 전면이 거울로 된 0.5평 남짓한 공간이다. 한쪽 스크린에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아티스트 셰익스피어(Shxpir)의 영상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스크린 맞은편의 작은 기계에서 셰익스피어가 만든 여러가지 디지털 아트 중 원하는 것을 몇개 고르자, 등 뒤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선택한 아트가 알아서 조합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스크린을 배경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10초 정도 주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영상이 내 메일로 전송됐다.

메일에는 이 동영상을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거나 NFT로 소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무료로 NFT를 주조해 가질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세계 최대 NFT 거래 플랫폼 오픈씨(Opensea)가 태동하고 NFT 최대 컨퍼런스인 ‘NFT NYC’가 개최되는 뉴욕이 기업들이 앞다퉈 NFT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종의 거대 실험실로 떠오르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자산이라는 점에서 같은 특성을 지니는 암호화폐 가격이 최근 급락하고 있지만 NFT는 여전히 소비재 기업과 미술업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 세계 최초의 NFT 자판기·레스토랑도 뉴욕에 둥지

올해 초 맨해튼 금융가의 좁은 골목 사이에 수상쩍은 자판기가 설치됐다. 자판기 상단에 적힌 ‘NFTS FOR SALE HERE(여기서 NFT 판매중)’ 문구가 아니라면 뭘 파는지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네온이 뉴욕 맨해튼 금융가에 설치한 NFT 자판기. / 네온 제공

네온이 뉴욕 맨해튼 금융가에 설치한 NFT 자판기. / 네온 제공

이 자판기 속에는 담배갑처럼 보이는 작은 상자들이 진열돼 있다. 상자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색깔(color)’이라고 써진 5.99달러짜리, 또 하나는 ‘파티 비둘기(party pigeon)’이라고 쓰여진 420.69달러짜리다. 둘다 NFT다.

NFT 자판기를 기획한 회사는 가상화폐의 일종인 솔라나(solana)를 기반으로 한 NFT 거래 및 미술 갤러리를 운영하는 네온(NEON)이다. NFT를 암호화폐 없이도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자판기를 만들었다.

다만 현재 이 자판기는 내부 점검 중으로 운영되지는 않고 있다.

내년에는 세계 최초의 NFT 레스토랑 플라이피쉬 클럽(Flyfish club)이 뉴욕에 문을 연다. 미국의 연쇄 창업가이자 NFT 전도사인 게리 베이너척을 비롯한 요식업계 유명인사가 만든 이 식당에 입장하려면 NFT를 구매해야 한다. 이 NFT가 일종의 회원권 역할을 한다.

플라이피쉬 클럽이 지난 8월에 회원권 판매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1294개가 판매됐다. 회원권 가격은 2.5이더리움(3000달러, 403만원)에서 시작됐으며 오픈씨 같은 플랫폼에서 재판매가 가능하다.

현재 매물로 올라와있는 회원권의 최대 가격은 150이더리움(18만900달러, 2억원)이다.

회원권을 소유한 사람들은 레스토랑과 칵테일 라운지에 입장할 수 있으며, 오마카세(일본어로 ‘맡김’이라는 뜻으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코스요리를 맡긴다는 의미)를 먹으려면 별도 NFT를 구입해야 한다. 오마카세 NFT를 산 사람들은 전용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 NFT, 위·변조 불가능·이력 추적 돼…기업·예술계 러브콜

암호화폐 가격 급락에도 많은 기업과 예술계는 여전히 NFT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값을 부여한 인증서다. NFT를 발행하면 자산의 소유권, 구매자 정보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가 수만~수십만개로 분산 저장 된다. 복사나 다른 NFT와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토큰이라고 말하며 디지털 인증서라고도 한다.

NFT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분야가 미술계인데, 디지털 아트의 부상과 관련돼 있다. 디지털 이미지나 영상 등은 너무나 쉽게 복제할 수 있다.

가령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의 경우 누구나 저장해 여기저기 옮길 수 있다. 이렇게 몇차례 어딘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최종 소유권자는 누구인지, 어떤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패션업계에선 NFT를 한정판에 열광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유인하면서 가품을 가리내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회사가 나이키다.

나이키는 지난해 가상 스니커즈 기업 아티팩트(RTFKT)를 인수한 후 올해 가상 스니커즈 NFT를 판매했다.

NFT 데이터 분석업체 NFT게이터에 따르면 나이키가 지난 1년 간 NFT 관련해 올린 매출은 패션업계에서 가장 많은 1억8530만달러(2500억원)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