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사태'에 놀란 당정이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발빠른 규제책 대신 자율규제로 돌아서 그 배경을 두고 이목이 쏠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이낸스를 비롯한 규제회색지대 사업자를 완전히 걸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3일 당정은 국내 주요 5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경영진을 불러 2차 당정 간담회를 열고 업계의 자율 개선방안, 이른바 코인 자율규제를 사실상 승인했다. 5대 거래소는 우선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협의체를 출범, 자율적으로 상장 관련 기준을 마련해 개선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소통 채널로 활용하기로 했다. 제2의 루나 사태를 막고자 5대 거래소가 ▲거래지원 ▲시장감시 ▲준법감시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공통된 시장 자정에 나서는 한편, 오는 9월부터 가상화폐 경보제와 상장 폐지 기준을 마련하고 백서와 평가보고서 등 가상화폐 정보를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동시에 위험성이 높거나 공시와 다른 비정상적인 추가 발행이 확인될 경우, 공동 대응에 나서고 특정 가상자산 내 이슈 발생 시 가상화폐 입출금 허용 여부, 거래지원 종료 일자 등을 논의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이로써 정부는 사실상 5대 코인 거래소를 인정, 이들에게 현 증권사 수준의 권한 및 영업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시장 규제 권한도 일부 내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비롯, 이른바 업권법 마련전까지 업계의 자율규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사실상 일본 금융청의 코인 규제와 유사한 모델로 접어든 것. 일본은 금융청에서 허용한 코인만 거래소들이 상장하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을 택하는 한편, 민간 협회에 상당수 권한을 주는 자율규제 형태로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결국 디지털 자산 기본법과 관련 입법 마련 전까지, 시간을 갖고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루나 사태'에 대한 여론 악화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각각 가상자산 관련 규제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어 우리 정부 역시 이들과 보폭을 맞추겠다는 것. 실제 미국은 기존 증권법 및 상품거래법 등 금융 관련 법령에 가상자산을 포섭해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를 적용하는 한편,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행정명령을 내려 가상자산 규제 보고서 제출을 지시한 상태다. 오는 9월 중 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보여, 이후 관련 입법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EU 의회가 최근 디지털 자산을 위한 입법 패키지 미카(MiCA: Markets in Crypto-Asset Regulation) 법안을 통과, 코인 사업자의 사업계획서(백서) 및 발행 요건 등을 점검하고 있어 이 역시 규제당국의 중요한 사례로 쓰여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내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규제안이 등장할 경우, 역차별 논란으로 국내 자금만 해외로 이탈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업비트와 빗썸의 일거래량을 더한 것 이상으로, 국내 자금이 해외 코인선물 시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테라 '루나'의 바이낸스 일거래 수수료는 최대 수천억원에 수준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낸스는 조세회피처에 본사를 두고 있어, 미국 SEC 역시 현장조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오는 9월 중 나올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 관련 보고서가 사실상 우리나라 역시 유사하게 적용될 것"이라며 "주요 선진시장의 가상자산 규제안이 본격화되고 있어, 시간을 벌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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